또 십몇일이 지났고, 화분 흙은 바싹 말랐다. 물을 흠뻑 줬다. 금요일 퇴근 후 저녁, 토요일. 이틀 동안은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고 그냥 집에서 숏츠만 봤다. 주말엔 이래도 되는 건가? 안되는 건가? 오늘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작업실에 가서 저녁 먹기 전까지 외주 작업. 한 주 동안 마음 한구석을 콕콕 찌르던 투두 리스트 하나를 해치웠다. 한 번에 컨펌이 나면 좋겠다. 회사 일도 하려고 했는데 그건 못했다. 오늘 자기 전에 2-3시간은 봐야 하는데. 12시까지 일 좀 하고, 6시간 자고, 6시에 일어나서 다시 회사 가고. 그러면 8시 출근 시간 전까지 2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나는 내 시간을 이미 토큰화해서 쓰고 있다. 일이 끝없이 쏟아진다. 산성비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삶이 게임이라면 이왕이면 열심히 사냥하고 성장하고 더 강해지는 RPG 게임이면 좋겠는데. 잠수 좀 타도 되는 그런. 하지만 아니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판이고, 잠깐 한 눈 팔면 게임 오버다. 종종 '일이 많은 게 그래도 좋은 거지'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답답해진다. 물론 일을 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우울, 고립, 생존, 소외. 여기보다 한 단계 위에 노동과 피로와 소비와 불안. 여기보다 한 단계 위엔 뭐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스터디 카페는 일요일에도 하루 종일 만석이다.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꿈이라고 하던가-가 있던가. 아니면 아이가 있던가. 아니면 불만투성이로 맛있는 거나 사 먹으면서 늙어가던가. 삶에 반찬감을 의미는 생각보다 몇 개 없다. 삶이 왜 이렇게 서울의 묘하게 구린 프랜차이즈 식당들 같아지고 있는 것 같지. 비싸기만 비싸고 맛대가리가 없다. 진짜 자는 시간 빼고 일만 하는 선, 후배들이랑 겨우겨우 시간 맞춰서 밥 먹으면 서로 계산하려고 실랑이한다. 예전엔 왜 그러는지 이해 못 했는데 이젠 좀 알 것 같다. 돈이란 게 이럴 때나 쓰지, 나머진 뭐 벌고 모아봤자 대단한 이득도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로 일하는 후배는 의뢰인들을 만나러 서울 여기저기를 택시 타고 돌아다닌다. 의뢰인들은 대부분 무례하다고 한다. 의뢰인이 뒤에서 쫓아올까 봐 무서워서 택시를 타고나면 "빨리 출발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꽉 막힌 서울의 도로 위, 그는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말을 건다. 어떻게 지내세요. 다들 도대체 어떻게 계속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싶어서 말을 건단다. 다들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심히 일하고, 놀라우리만치 취약하다. 지하철에 찌그러져있는 우리들을 볼 때는 애틋하고 회의실에서 표정이 썩어있는 동료를 볼 때면 짜증이 난다. 연민과 경멸 모두 사람을 대하는 마음으로는 비슷하게 오답이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사진을 찍지 않는다.아리스토텔레스 : 지금 하는 일이 나의 고유한 탁월함을 발휘하는 방향인가. 아니면 그저 시간을 때우고 있는가? 스토아 철학 :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있는가. 통제 밖의 일에 에너지를 쏟으며 괴로워하고 있진 않은가? 실존주의 :지금의 삶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진 결과인가, 아니면 주어진 대로 떠밀려온 것인가? 니체 : 지금 이 삶을 그대로 무한히 반복해도 좋은가? 공리주의 : 내 선택은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행복의 총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유교 :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속 내 역할에 충실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도가 : 지금 나는 흐름을 거스르며 애쓰고 있는가, 아니면 자연스럽고 편하게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는가? 실용주의 : 내가 믿고 따르는 신념과 가치들이 실제 삶에서 효과를 내고 있는가, 아니면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일 뿐인가? 불교 : 내가 지금 괴로운 건 어째서인가. 성공, 인정, 소유에 대한 집착 때문인가? 이것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나? 하이데거 : 나는 지금 '세상 사람들(das Man)'이 기대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유한성을 자각하며 살고 있는가?3/4분기. 직장인의 수확철 앞두고 팀 내에 공유한 몇 가지 생각들. 미팅록 이름은 오만하게도 '성공하는 법'. 일단 이기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내 욕망, 내 노력의 방향, 게임의 룰이 다 정렬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걸 열심히 하면 보상으로 돌아오는 판에 있어야 복리가 작동한다. 아니면 열심히 할수록 소진되고, 경쟁에서도 결국 진다. (시간이 갈수록 남아있는 경쟁자들은 복리를 누리는 이들일 것이기 때문에.) 루틴, 프로젝트, 목표 셋 다 있어야 한다. 루틴은 시간의 형태, 프로젝트는 시간의 주제, 목표는 종착점. 루틴이 없이 프로젝트만 있으면 마음은 바쁜데 생산성이 안 나온다. 프로젝트가 없이 루틴만 있으면 성과도 안 나오고, 목표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뭘 더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가 없다. 목표가 없으면 루틴이든 프로젝트든 헛수고다. 루틴, 프로젝트, 목표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없으면 무조건 실패한다. 멍청한 생각을 안 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인 이상 멍청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걸 피하기 위해서 자주 쓰는 도구들. 프리모템 : 부검이라는 뜻. 하고 있는 일이 완전히 망했다고 가정해 보자. 왜 망했을까? 답을 생각해 보고, 그걸 지금 바로 고친다. 간단해 보이는데 은근 잘 못한다. '개망함'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 용기를 쉽게 내려면 스스로에게 자주 얘기해 줘야 한다. 나는 우주먼지야. 동료에게도 자주 얘기해 줘야 한다. 망해도 우린 널 사랑해! 커네빈 : '놓인 자리'라는 뜻. 문제는 저마다 다른 칸에 놓여있다. 문제는 칸별로 그에 맞는 접근 방법이 있다. 흔한 '칸'은 단순한 문제, 복합적인 문제, 잘 모르겠는 문제, 큰일 난 문제, 무질서한 문제. 단순한 문제는 세상에 답이 이미 있어서 그걸 잘 따라 하면 되는 문제. 바퀴를 재발명하겠다고 고민하면 안 된다. 복합적인 문제. 여러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문제. 이건 전문가한테 맡기거나, 아니면 AI한테 맡긴다. 잘 모르겠는 문제. 이건 해보기 전엔 모른다. 새 프로덕트가 잘 팔릴까? 누가 아나. 빨리 시도해 보고 검증해 봐야 안다. 큰일 난 문제. 단순하든 복잡하든 일단 눈앞에 직면한 문제부터 해결한다. 불이 났으면 불을 꺼야 한다. 무질서한 문제. 앞의 4개 중 어떤 칸인지 알아낼 때까지 더 들여다본다. 이건 기본이고. 커네빈을 조금 더 넓게 해석하면 문제를 해부하기 위해선 맞는 방식으로 데이터 라벨링을 해야 하고, 라벨링을 위한 체계도 여러 개가 있다는 인식도 갖고 있어야 한다. 이항대립으로 생각할 때와 매트릭스 뷰로 생각할 때 결과는 아주 다르게 나온다. MECE 피라미드 : Mutually Exclusive(서로 겹치지 않고)+Collectively Exhaustive(모으면 전부). 명제를 맨 꼭대기에 두고, 그 아래에 MECE 한 근거들로 기둥을 세운다. 서로 겹치지 않고 모으면 전부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부할 수 있으면 꽤 탄탄한 모델. 파레토 : 중요한 소수를 중요하게 대접한다. 변수들 간의 민주주의 방지. 중요한 것만 먼저 고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일요일 : 월요일 할 일을 미리 하려고 마음먹지만 일요일에 쉬어야 한다는 도그마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상태로 하루 종일 뒹굴다가 저녁 즈음 겨우겨우 노트북을 켠다. 온갖 일들에 주의를 뺏기다가 결국 늦게 자는 날. 월요일 : 막상 출근하면 생각보단 할만한 날. 애써 회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주말 잘 보내셨나요라고 묻고, 돌아오는 적막을 견디는 날. 할 일 잔뜩 만들어두고 일단 퇴근한다. 화요일 : 야근하는 날. 일 말고 다른 생각하기 힘들다. 수요일 : 야근하는 날. 일 말고 다른 생각하기 힘들다. 2 목요일 : 수요일까지 똑바로 돌아갔으면 한숨 돌리고 병원에 가거나 귀찮은 행정 처리를 하거나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약속 잡아도 되는 날. 금요일 : 일상의 무게가 극적으로 가벼워지는 날. 일단 내일은 좀 쉴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이 가뿐하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제법 괜찮은 덩어리의 시간이 앞에 놓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낙관하게 된다. 토요일 : 최선을 다해서 사치와 방종을! 아, 벌써 어제가 아득하다.쳇바퀴 안 타고 살 수는 없고, 지금 타고 있는 쳇바퀴가 맘에 안 든다고 여러 개의 쳇바퀴를 굴리려다간 몸이 상하고. 쳇바퀴 하나를 잘 골라야 하는데. 공원 뚫고 출근하는 길에 청설모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쳇바퀴. 열심히 타면 그 보상으로 더 쳇바퀴 타는 게 점점 더 쉬워져야 하는데. 굴리는 게 복리로 작동해야 하는데.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은 구조적으로 지는 게임 같다. 타수 아무리 빨라도 결국엔 게임 오버 당하는 산성비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일 쳐내고, 또 하나 쳐내고, 또 하나-. 일 마칠 때 나오는 도파민으로 목숨 연장하고. 그나마 이것도 안 하면 템 다 드롭하고 바로 태초마을에서 초보자로 다시 시작인 거다. 성황당 할머니한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세 번 외치고 싶어라.팀 리드를 3년쯤 하다보니 면접관 입장에서 면접을 치룰 일이 꽤 많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고정으로 쓰는 질문들이 생겼는데 오늘 다른 팀장님들, 대표님이랑 채용 관련해서 얘기 나누다 보니 쓰는 질문들이 다 비슷하더라. 포지션, 연차와 상관없이 면접에서 검증해야 하는 것들의 기본은 다 통하는 듯. 먼저 경험을 검증한다. 경험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꼬리 질문. 이력서에 적은 경험을 그냥 듣는 건 '사실대로 적은 것 맞죠?' 재확인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당시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가급적이면 숫자로), 어떤 의사결정들 사이에서 고민했었는지 같은 질문을 5번 정도 파고들어서 해야 한다.(5Why 프레임워크가 여기도 적용) 역량. 역량은 경험과 다르다. 이전에 쌓은 경험들은 보통 팀으로 한 일이기도 하고, 과거의 데이터여서 지금 이 사람이 우리 팀에 합류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검증하는 툴로는 부족하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선 우리 상황과 데이터를 주고, 시나리오를 짜보라고 해야 한다. 미션은 뭐고, 상황은 이렇고, 예산과 기한 등 제약을 알려주고 어떻게 미션을 해낼 것인지에 대한 답을 듣는다. 일반론적인 접근법-예를 들어 '리서치부터 하겠습니다.'-로만 답이 나오면 조금 더 파고든다. 더 깊은 답을 얻어내지 못한다면...기대치를 조절한다. 태도.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 동안, 지원한 회사의 직무와 관련되어 있는 조사를 해 보았는가. 가령 마케터면 광고 라이브러리 한번 들어가 봤는가. hr 매니저면 채용 페이지 한번 뜯어봤는가. 이것도 안 하는 사람 진짜 많다.친구들 만나서 밤새 그 어떤 진지함도 없는 얘기만 하다가 술 냄새 풍기며 쓰러져 자기. 투 두 리스트, 워크플로, 루틴, 하네스, 루프 따위의 개념을 따라 흐르는 정보로 이뤄진 매끈하지만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시스템을 잠시 잊게 할 만큼 시끄럽고 무례하고 의미 없고 천박하게 놀기.해장국으로 끝나는 이 의례의 이름으론 역시 해장이 어울릴 것이다. 끊임없이 주의력을 좀먹는 디지털-주의력 노동의 취기를 가라앉히는 해장.결국 인간성은 노드로 쪼개질 것이다. 라벨이 붙은 데이터가 될 것이다. 무겁디무거운 의미가 모두의 승모근을 결리게 할 것이고 디지털 마약은 진실을 먼지로 풍화시켜 버릴 것이다.성과내는 팀을 만들기 위해선 루틴, 프로젝트, 목표 3개가 ‘전부’ 필요하다. 프로젝트 정해진 기간 안에 특정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회성 작업 단위. 성과의 '증거'가 되는 단위이자, 팀의 역량과 임팩트를 외부에 보여주는 수단. 프로젝트 없이는 루틴과 목표가 추상적인 채로 남는다. 루틴 반복적으로 실행되는 운영 체계. 프로젝트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자, 팀의 기본기(quality baseline)를 유지하는 장치. 루틴이 없으면 매번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재설계해야 하고, 팀원 개개인의 컨디션에 성과가 좌우된다. 목표 프로젝트와 루틴이 향하는 방향성이자 우선순위 판단 기준. 목표가 없으면 프로젝트는 산발적이 되고, 루틴은 관성으로 전락한다.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답하는 장치이며, 팀원들의 동기부여와 자원 배분의 기준이 된다.이곳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글쓰기가 말하기와 아주 다른 것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더 이상 얼굴을 갖지 않기 위해, 자신의 글쓰기 아래 스스로를 묻어 버리기 위해 글을 씁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 곁에, 바깥에 있으며, 종잇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재미없고 지루하며 근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타인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이 삶이, 우리 눈앞에 있고 우리가 그 주인인 이 작은 직사각형의 종이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가도록 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상당한 위험 중, 미셸 푸코 무엇을 쓰느냐는 사실 어디에 쓰느냐에 달려있다.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더라도 공책에 손으로 적을 때, 혼자 보는 옵시디언 메모장에 적을 때, 빈 워드 문서에 적을 때, 슬랙에 적을 때 다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어떤 도구랑 상호작용할지도 맥락이고, 맥락이 달라지면 내용도 변한다. 그럼 블로그는 언제 쓰는 도구인가. 정제되지 않은 잡소리를 모바일로 아무 사진이랑 같이 올리고 싶을 때, 일상이라는 공간에서 글을 쓰나 안 쓰나 어차피 흘러가는 시간을 굳이 굳이 비정형 데이터로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릴 때. 일기라고 하기엔 너무 공개되어 있고, 에세이라고 하기엔 주제가 없는 잡문만을 위한 자리가 갖고 싶어져서 굳이 굳이 출근 전 카페에 들러 블로그를 정리했다. 과거를 비공개로 돌려 매끈해진 게시판에서 또 한 번 새로 시작. 잡초가 수북하게 쌓인 정원은 주인의 무심함을 증명하는데 잡문이 수북하게 쌓이면 무엇을 증명하게 될까. 자꾸자꾸 정리하고 자꾸자꾸 새로 시작하는 나를 못 미더워하는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퇴근길 지하철에서 블로그를 쓴다. 짧은 연휴는 지나갔고 다시 평일이다.1“건강도 일이다.” 얼마 전 홀타운 미팅에서 대표가 한 말이다. 동료에게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기 위해, 하던 일을 차질 없이 해내기 위해선 건강을 지키는 것도 일이라는 맥락이었다. 그 날로 회사엔 건강검진이 새로운 복지로 추가됐다.2나는 일은 묵묵히 하고 복지는 빈틈없이 누리는 흔한 직장인이다. 잠자코 제일 가까운 날로 예약을 잡아 검진센터에 갔다. 인생 첫 건강검진이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몸에 걸친 초록색 가운의 서늘한 감촉 덕분에 헐렁한 가운에 맥없이 쌓여있는 몸뚱이에 생각이 가닿는다. 동시에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부분들, 외모, 직업, 취향 같은 것들은 사실 가운처럼 얇디얇은 지표층에 불과하단 생각도 든다. 나는 내 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모른다. 나는 모른다.바캉스 1 : 휴가철바캉스는 프랑스어로 ‘비운다’는 뜻이다. 휴가를 떠난 뒤 텅 빈 도시의 모습 때문에 휴가철을 바캉스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바캉스 2 : 알리바이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비틀대며 찾아들어간 카페에서 창을 내다보니 역 앞 표지석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생명이 넘실대는 도시 부산. 넘실댄다는 말을 입 안에서 가만히 굴려보다 충동적으로 부산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넘실대는 생명이 필요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강남에선 아무것도 넘실대지 않으니까.아침에 핸드폰을 보다 이제는 잘 연락하지 않는, 사귄 지 오래된 친구의 생일이란 걸 알게 됐다. 케이크 모양 그래픽이 눈에 밟힌다. 하지만 출근이 급하므로 무시한다.에디터라는 직무가 풍기는 뉘앙스 덕분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일종의 '글 프로'로 대우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가 회사에서 쓰는 글들이 좀 부끄럽다. 애를 많이 쓰긴 했지만, 완성까지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을 저울질할 시간도 퇴고를 위해 초고를 잠시 묵혀둘 시간도 없다. ‘내 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에디터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글을 잘 내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수행하는 기능은 글이라기보단 마감이다.1내 인생의 첫 번째 탈주는 유치원에 처음 간 날이었다. 선생님은 내 앞에 사과가 그려진 종이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빨간색으로 칠해볼까?” 사과를 칠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나는 그 길로 조용히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유치원 밖을 슬쩍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상어 인형과 함께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의미있다고 믿는 일(상어 인형)을 위해선 왜 하는 지 당최 모르겠는 일(사과 색칠하기)을 때려치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최초의 사건이었다.취준생과 직장인 그 사이 어딘가, 계약직이 있다. 일을 하면서도 계속 다음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 대전의 한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J씨를 만났다.계약직 청년의 페르소나로 선정됐다. 선정된 소감과 계약직으로서의 히스토리를 알려달라.계약직의 페르소나라니 당치도 않다. 그저 수십만 계약직 중 한 명일 뿐이다. 지금은 모 공공기관 홍보팀에서 1년짜리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고, 이전엔 세종 소재 국책 연구원에서 6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일했었다. 그 전에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출산휴가 대체 인력으로 일한 적 있다. 졸업하고 일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안됐는데 벌써 3번째 회사다.두 개의 세상이 있다. 이 두 세상은 겹쳐져 있다. 표면의 세상을 ‘규칙의 세상’이라고 하자. 막내딸은 평생 결혼을 할 수 없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마마 엘레나의 농장이다. 두 번째 세상은 사랑의 세상이다. 이 두 번째 세상은 첫 번째 세상에 덮여있어서, 기름이 튀겨져 나오거나 불꽃이 이는 순간에만 잠깐씩 드러난다. 눈길로 물을 덥히고, 음식으로 사람을 발정하게 만드는 모든 마술적인 순간은 사랑의 세상이 잠시 드러난 순간이다. 사람들은 규칙의 세상을 지으며 오랜 시간 살아왔고, 그 결과 사랑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러나 잊어버렸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실은 잊어버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티타의 이야기는 이 불가능성을 다루고 있다.점심시간을 틈타 책을 후다닥 읽었다. 몇년 전,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칼럼계 아이돌 칭호를 얻은 김영민 교수의 산문집,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이다. 칼럼계 아이돌은 이번엔 ‘정치’를 안내하는 박학다식한 가이드로 분한 것 같다. 정치 개론에서부터 출발한 넉살 좋은 가이드의 이야기는 제도와 역사와 개념들을 드문드문 꿰어가며 우리 사회의 일상적 풍경까지 도달하는데, 글 하나하나마다 명화, 고전, 영화 등 인문학적 양념이 워낙 잘 쳐져 있어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최근의 여행은 제주도였다. 내겐 여행 갈 때 책을 딱 한 권만 들고 가는 버릇이 있다. 혹시나 시간과 비용을 쏟아서 가는 여행이 아무 의미 없이 끝나는 게 걱정돼서, 책이 담고 있는 의미가 여행의 의미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챙긴다. 의미의 보험이랄까. 책은 공들여 선정하지 않고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뽑아서 간다. 좀 미신적인 면모도 있지만 의미 부여란 결국엔 다 그런 거 아닌가.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얻은 책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신형철)』이다. 표지가 노란색 꽃이 가득 피어있는 들판 같길래 골랐다. 제주도 하면 유채꽃이니까. 저자는 책머리에 이런 문장을 써뒀다.퇴사할 땐 하고 싶은게 참 많았다. 매일 만화도 그리고, 내 브랜드도 런칭하고, 글도 꾸준히 써서 그걸로 먹고 사는 멋진 디지털 노마드가 되려 했었다. 1년 뒤, 하려 했던 것들을 조금씩은 다 건드려보긴 한 것 같긴 한데 결과는 영 신통찮다. 나는 과연 성장했나. 성장했다고 말하려면 이전엔 몰랐던 것, 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나는 되려 이전만 못 한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든다. 멈춰있진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멀리 온 것 같지도 않고. 출정과 퇴각을 번갈아가며 어지러운 발자국만 남긴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언젠가 피라미드를 보러 갔었다. 동행 중엔 전직 가이드가 한 명 있었다. 그는 가이드답게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았다. 피라미드로 가는 불편한 지프 뒷자리에서 그는 내게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지은 이유를 이야기해 줬다.이집트인들에게 사막은 무한한 공간이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사막은 그들을 두렵게 했다. 이집트인들은 이 두려움을 관리하기 위해 꾀를 냈다. 원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원 안에 점을 찍어두면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고 낸 묘안이었다. 사막을 알 수 없다면 사막 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남기자. 그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렇게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세웠다.요즘 인터뷰 검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인터뷰이가 하루에 하나씩 한 달 동안 질문에 답하면 그걸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의 글을 접하게 된다. 작업시간 때문에 일일이 읽어보진 못하고 문단 꼴 위주로 볼 수밖에 없지만 기어이 시선을 머물게 만드는 문장이 있다. 자꾸만 나타나며 작업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두 유형의 아름다움에 대해 기록해둔다.첫 번째는 청년의 불안한 문장이다. 여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순결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닮아있다. 막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청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생에 대한 불안, 고뇌, 우울 같은 것들은 아직 세상의 어떤 모순에도 깊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불안한 문장은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나 으레 겪는 성장통쯤으로 누군가 이미 상품화해둔 문장의 복제품이 아니다. 어제까지의 삶을 길어 올려 내일의 삶을 창조하려는 시도에서 이는 불꽃같은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며 불안을 손쉽게 무마하려는 나태함이 아니라,’ 원래 이런 것인가?’를 묻는 집요함이기에 아름답다. 불성실한 독자인 나는 내 시선을 붙들어 놓은 불안한 문장을 읽으며, 이 문장을 써놓은 청년의 삶이 속히 안정을 찾아 행복해지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과 잘 섞이지 않는 야망을 계속 간직해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품는다. 이런 마음이 남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나는 편히 그 덕을 누리려는 비겁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문장의 화자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치기 어린’이라는 형용사로 수식될 수 있는 고민으로도 누군가를 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젊은 화자의 특권이다.처음 가보는 공원에 가봤다. 올림픽 기념 체육 시설이 들어서 있는, 오래전에 조성된 공원이다. 꽤 넓은 공원인데 내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자리에 있어서 아예 존재 자체를 몰랐다. 공원은 수영장, 운동장, 배드민턴장, 족구장, 농구장이 차례대로 붙어있는 직사각형 꼴이었다. 나와 친구는 농구장 앞 벤치에 앉아서 피자와 맥주를 먹었다. 피자랑 맥주를 사서 공원에 오기 전까지 친구는 자소서를 썼고 나는 '소파 위에서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조금 썼다. 나는 친구가 자소서를 쓴 걸 알지만 친구는 내가 뭘 하는지 모른다. 그냥 뭘 하겠거니 했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모르겠지...하기야 나도 친구가 어떤 회사에 낼 자소서를 썼는지는 모르니까 서운할 것도 없다. 우리는 피자와 데스페라도스를 나눠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했다. 옛날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오랜 친구인 것은 확실하지만, 만나서 나누는 얘기의 대부분이 옛날이야기일 때 나는 조금 슬퍼진다. 오랜 우정이라기보단 늙은 우정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그런 우정.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다거나 친구가 싫어진 것은 아니지만 늙은 우정 앞에서는 언제나 조금 외롭다. 새롭게 외로워진 것이 아니라, 늙은 우정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항상 느끼고 있는 외로움을 향한 길을 터준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을 조금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맥주를 마시던 친구가 말했다. "아 너무 외롭다" 친구는 같이 있을 때 외롭다고 말해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관계에 붙이는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상처 받지 않았다. 나도 대답했다. "그러게. 개 외롭네" 우리는 서로가 외로움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 주변엔 두 패거리가 있었다. 하나는 2:3으로 농구를 하고 있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둘기들이었다. 우리는 둘 다 농구하는 아이들 쪽에 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2:3으로 농구를 하고 있으므로 딱 1명만 낄 자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은 농구하는 아이들에게 가고, 진 사람은 비둘기들에게 가기로 했다. 내가 가위바위보에서 졌다. 가위바위보를 하기 전엔 비둘기랑 놀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고 나니 농구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얘기했다. 넌 농구 안 하지 않느냐, 나는 00포대의 르브론 제임스였다. 그러니까 한 번만 바꿔줘라. 친구는 잠시 망설이다가 바꿔줬다. 친구는 비둘기랑 뭘 같이 하긴 싫지만 어차피 벤치 주변엔 비둘기가 많고, 네가 농구장으로 가면 나는 더 이상 무리가 아니라 혼자가 되므로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비둘기 사이에 있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를 비둘기 무리 속에 버려두고 농구를 하러 갔다. 그런데 농구장을 향해 가다 보니 아이들이 나랑 같이 농구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2:3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애초에 외로워서 농구를 하고 싶어 했단 걸 기억해 냈다. 만약 아이들이 나랑 농구를 하기 싫어하는데 그 사이에 껴서 농구를 한다면 친구랑 같이 있는 것보다 천 배는 더 외로운 일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비둘기들에게 돌아갔다. 친구는 왜 돌아왔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비둘기가 구애 중이니까 한번 보라고 했다. 유난히 목이 부푼 비둘기 한 마리가 다른 비둘기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아침에 산에 가면 들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말없이 비둘기를 봤다.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분명 경쟁력이다. 세간에선 어떤 글을 '좋은 글'로 평할까. '글 잘 쓰는 법'을 조언하는 콘텐츠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말은 '짧게 써라' 인 것 같다. 가능한 한 쉽고, 정확하게, 짧게 써라. 그래야만 읽힐 것이니.하지만 꼭 짧게 써야만 '좋은 글'일까? 간결한 문장은 물론 글의 전달력을 높이지만, 그렇다고 간결함을 '좋은 글'이 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여기는 건 경계해야 한다. 세상엔 쉽게 표현될 수 없는 생각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비주류일수록 더 그렇다. 평론가 황현산은 '억압받는 사람의 진실이야말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속한다'라고 썼다. 故 노회찬 의원은 비유적 표현을 선호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생긴 대로 살자는 말은 쉽지만 생긴 대로 살지 말자는 말은 논리구조가 복잡하다'라고 답했었다. 변화를 주장하는 모든 말을 사실 쉽게 쓰이기 어렵다. 진부한 생각을 간결하게 쓴 글과, 새로운 생각을 복잡하게 쓴 글 중 뭐가 더 '좋은 글'인지는 쉬이 판단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퇴사한 지 어느새 1년이다. 원래 계획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였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받아서 하는 잡식성 노동자가 되었다. 내가 지금 백수인지, 프리랜서인지, 뭔지 모를 아리송한 상태로 시간이 쌓이는 것이 처음엔 불안했지만 요즘은 괜찮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니까 사랑하진 못해도 미워하진 말아야 한다고 도 닦는 소리를 숱하게 되뇐 덕분에 이제는 섣불리 희망에도 절망에도 몸을 내맡기지 않는, 그런 심드렁한 안온함을 즐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그럭저럭 살게 되었다.지난 주말에 친구가 책방을 오픈했다. 나는 거기서 일을 도왔다. 끼리끼리라고 얼굴을 비추러 온 친구의 친구들도 자영업자였다. 손님을 기다리며 우리는 둘러 앉아 커피를 마셨다. 벽의 두 면이 통유리인 친구의 책방은 햇살 맛집이었다. 우리는 책방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칭찬했다. 다들 자기 가게가 있다보니 자연스레 대화는 햇살 자랑 콘테스트가 됐다.참가번호 1번 카페 사장님은 자기 가게엔 오전 10시 쯤 볕이 잘 드는데 안쪽 벽이 나무재질이어서 꼭 평화로운 숲 속의 거대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자랑했다. 참가번호 2번 술집 사장님은 창이 서향이라 낮 동안엔 볕이 잘 안들지만 어차피 그 시간엔 영업을 안 하니 괜찮다고, 그래도 오픈 준비할 때 보이는 노을이 참 좋다며 웃는다. 주방에서만 보이고 어차피 그쯤엔 들어오는 손님도 없지만 그래서 저 노을이 오직 자기만을 위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한다. 햇살자랑을 하는 참가자들의 얼굴은 참 좋아보였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한마디 씩 하다보니 자연스레 내 차례가 돌아왔다. 친구가 묻는다. "너네 거긴 어때?" 친구의 친구인 사장님들이 묻는다. "상우씨도 가게 하세요?"어젠 밤을 새웠다. 대학생 때야 술도 먹고 연애도 하고 게임도 하고 과제도 하려니 밤을 새우는 일이 빈번했지만 짧은 직장 생활을 거쳐 안온한 백수의 삶에 접어든 이후로는 처음 세우는 밤이다. 사실 밤을 새우는 건 고정 수익이 없는 백수에겐 적잖이 사치스러운 일이다. 잠의 효능-잠이 보약이다-을 누리지 못할뿐더러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세상에서 활동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불필요한 소비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자는 동안엔 돈을 못쓴다. 그러므로 매일 푹 자야 한다. 나의 24시간을 경제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우수' 등급을 받을만한 시간은 자는 시간이 유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