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사는 일은 개같은 문제입니다

No. 0052
2022.02.14 · 1,612자 · 약 3분

점심시간을 틈타 책을 후다닥 읽었다. 몇년 전,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칼럼계 아이돌 칭호를 얻은 김영민 교수의 산문집,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이다. 칼럼계 아이돌은 이번엔 ‘정치’를 안내하는 박학다식한 가이드로 분한 것 같다. 정치 개론에서부터 출발한 넉살 좋은 가이드의 이야기는 제도와 역사와 개념들을 드문드문 꿰어가며 우리 사회의 일상적 풍경까지 도달하는데, 글 하나하나마다 명화, 고전, 영화 등 인문학적 양념이 워낙 잘 쳐져 있어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그런데 이 책, 재밌다고 해서 마냥 가벼운 건 아니다. 외려 묵직한 카운터 펀치를 숨기고 있다. 탈정치화되기 쉬운 세태를 인정하면서도, 그 경향성을 은근하게 조소한다. 전문성이 유명세와 혼동되고, 논쟁과 합의가 마케팅으로 대체되고, 시민이 팬으로 환복 하는 풍경을 슬쩍슬쩍 보여주며 당신의 내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은근히 눈짓한다. ‘오… 이거 흥미로운데?’ 하며 가이드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도착하는 곳은 언제나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이다. ‘정치’인 줄 알았던 여행지는 이제 보니 ‘인간’이었다.

그런데 인간으로 사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여행의 끝에서 피로가 100% 확률로 기다리고 있듯이. “귀찮음이 기본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가이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가이드의 뒤통수에다가 대고 외치고 싶다. “그냥 살면 안 될까요?” 가이드는 근엄하게 답한다. “…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지당하기만 한 도덕적 담론을 넘어서는 강철 같은 생각이 필요하다. 잘 다져진 절망과 희망을 안고 강철로 이루어진 생각의 징검다리를 밟으며 죽을 때까지 의연하게 걸어가야 한다”. ‘왜 인간이 되어야 하냐’는 질문에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대답하다니. 여행이 아니라 <오징어 게임>이었던 걸까?

점심시간이 끝나서 책을 덮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본다. 저 멀리 벽에 붙은 파이썬 개발자 교육과정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트렌디하게 <오징어 게임>의 심벌을 차용했다. 파이썬의 ㅍ은 붉은색 네모를 품고 있고, ㅇ는 분홍색 동그라미가 되고, ㅆ은 세모를 품고 있다. 저 교육과정에 들어가서 코딩을 배우다 오류를 내면 총에 맞게 되는 걸까? <오징어 게임>이 대흥행하면서 분홍색 네모 세모 동그라미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버스에도 있고 핸드폰 대리점에도 있다. 상징이 현실의 경계를 넘어올 때, 현실 뒤에 가리어져있던 진실이 드러나는 법. 여긴 <오징어 게임>이다.

다시 책을 펼친다. <오징어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힌트를 찾는 마음으로 마지막 문장을 훑는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그러나 그 생각의 공화국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아직 오지 않은 생각의 공화국에서 인간으로 살려는 자는 언제나 구토를 하게 된다. 구토를 한번 크게 할 때마다 한 계단씩 아래로 처박힌다. 그러다가 ‘사람 사는 꼴’로 한번 살아보겠다며 어느 지점에서 실패할 것인지를 정하게 된다. 영원히 구토만 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어느 정도의 인간으로 살 것인지, 어디까지 외면할 것인지, 어디까지 대충 살 것인지를 조율해야 한다. 이 굴종적인 조율의 이름도 어쩌면 정치다.

“정신 차리세요!” 이크, 옆자리 과장이 내게 얘기한다. 점심시간이 끝났는데도 인간에 대해 궁리하고 있던 게 티가 났나 보다. 헌데 이상하다. 정신 차리라니. 몇 달 전, 잡식성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벽에 <오징어 게임> 포스터가 붙어있는 지금의 회사에 들어가, 마침내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다시 승낙했을 땐 다들 내게 한 얘기가 “정신 차렸구나”다.

그놈의 인간이 되려고만 하면 영 정신이 빠진 놈처럼 보이는 것, 괜찮은 걸까? 살아남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들 하던데, 칼럼계 아이돌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니, 이것 참, 어느 장단에 놀아나야 하는 건지. 인간으로 사는 일은 정말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아무래도 ‘하나의 문제’라는 표현으론 이 어려움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조금 더 정직한 제목은 이거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개같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