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다음 일을 찾는 이들
취준생과 직장인 그 사이 어딘가, 계약직이 있다. 일을 하면서도 계속 다음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 대전의 한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J씨를 만났다.
계약직 청년의 페르소나로 선정됐다. 선정된 소감과 계약직으로서의 히스토리를 알려달라.
계약직의 페르소나라니 당치도 않다. 그저 수십만 계약직 중 한 명일 뿐이다. 지금은 모 공공기관 홍보팀에서 1년짜리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고, 이전엔 세종 소재 국책 연구원에서 6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일했었다. 그 전에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출산휴가 대체 인력으로 일한 적 있다. 졸업하고 일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안됐는데 벌써 3번째 회사다.
‘지방, 공공기관, 계약직’의 키워드로 커리어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 ‘지방, 공공기관,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사실 지방 사람에겐 공공기관만 한 직장이 없다. 안정적이고, 업무 강도가 낮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고, 무엇보다도 일단 집에서 다닐 수 있다. 고향에서 살려면 공공기관 아니면 공무원이다. 근데 난 공채를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졸업하고 집안 형편 상 어떻게든 빨리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뽑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공채보단 수시로 공고가 올라오는 계약직에 더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NCS를 준비하면서 독서실 다닐 필요 없이, 아삽(ASAP)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렇게 계약직의 세계에 입문했다.
.
직장을 찾아서 ‘지방, 공공기관, 계약직’의 세계에 들어섰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원래 하고 싶었던 직업은 따로 없었나?
사실 전공을 살려서 광고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졸업 전에 서울에 있는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을 잠깐 했었는데 그때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다들 겪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집값이며 생활비며 경제적인 문제에서부터 서울이라는 낯선 환경에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은 정서적인 부분까지 여러모로 지옥이었다. 아무래도 집이 지방이다 보니까 감수해야 할 것들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은데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랄까, 역량이랄까. 뭐가 됐든 그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지금 직장은 홍보팀이라 원래 꿈꿨던 일이랑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
그렇지도 않다.
왜 그런가? 계약직이라는 직책과 관련이 있는가?
어느 정도는. 엄밀히 말하면 공공기관의 계약직이어서 그렇다. 기관, 부서만 다르지 공공기관 계약직이 하는 일은 행정업무가 8할이다. 기획은 대부분 대행사에게 맡긴다. 계약직은 대행사 선정 등 예산 집행하는 행정 실무를 도맡는다.
‘도맡는다’라고 표현했는데,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계약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뜻인가?
그렇다. 기여도로만 따지면 사실상 PM이라고 보면 된다. 사업은 진행해야 되는데 일손이 달리거나, 일을 맡길만한 사람이 없을 때 용역 맡기듯이 뽑는 게 계약직이다. ‘사바사(사람 by 사람)’ 겠지만 계약직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 까지가 자기 업무라고 생각하는 정규직 담당자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실적은 공식적 담당자(정)인 정규직이 챙긴다.
그렇게 기여도가 높으면 보상이 따르지 않나?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다거나…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적어도 지금 다니고 있는 기관에 한해서는 0%다. 계약직으로 일한 경험을 서류나 면접 과정에서 어필할 순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정규직 채용과 연관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조건 공채다. 형평성 이슈에 특히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한다.
근데 실무 경험, 능력보다 NCS 문제풀이를 잘하는 게 더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 때문에 일하다 ‘현타’가 올 때가 있긴 하다. 당시 내 여건엔 NCS 공부보단 계약직으로 일단 돈을 버는 게 최선이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정규직이 될 수도 없고 될 확률을 올리는데도 큰 효험이 없다는 생각을 할 때면 근로의욕이 조금 꺾인다. 이거 익명 맞죠?
계약직이라서 힘든 점이 있다면?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 계약직이면 인턴이나 아르바이트생과 달리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위치인데, 직장 내에서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항상 다음 일자리를 걱정해야 된다는 것이 지칠 때가 많다.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가장 큰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불안은 사실 요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기도 하다. 미래 말고 현재의 상황에서 계약직이라 겪는 힘든 점은 없나?
힘들기보단 화나는 포인트가 있다. ‘계약직=무능’으로 보는 시선을 마주할 때 너무 화나고 답답하다. 이전 직장에서 팀장에게 업무분장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한 적 있었는데, 사석에서 ‘열심히 해서 정규직으로 오지 그랬어’라고 말했다는 소릴 들은 적 있다. 다른 것보다 ‘열심히 해서’라는 말이 너무 화나고 슬펐다. 내가 ‘열심히 안 해서’ 계약직이라는 소리니까.
실무능력과 정규직으로 입사할 때 필요한 능력이 찰떡처럼 들어맞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일단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NCS나 다른 스펙을 쌓는 덴 시간이 필요하니까. 나는 그런 자원이 없었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쉴 새 없이 일했다. 늘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는데도 몇몇 사람들의 눈에는 계약직이라는 이유 만으로 정규직에 비해 노력도 안 하고 능력도 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아 속상하다. 경쟁을 뚫고 정규직 되는 건 물론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얕잡아볼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다.
애환이 많은 것 같다. 공공기관 계약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충고를 한마디 한다면?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하면 계약직밖에 못한다는 말이 있다. 계약직은 조직에 속한 게 아니라 소모품의 성격이 강하고, 소모품을 성장시켜주는 조직은 없다. 커리어 시작 전이라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스스로 지금 취준생이라고 생각하는가,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주경야독하는 취준생’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일은 하고 있지만 늘 ‘취뽀’를 늘 꿈꾼다. 취업하고 싶다.
*위 인터뷰는 2020년 7월에 진행했습니다. 약 2년이 지난 지금, J씨는 여전히 같은 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계약이 계속 연장되는 사실상의 무기계약직이지만 비슷한 연차의 정규직에 비해 연봉 등 처우도 열악하고 승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이직을 꿈꾸고 있다고 합니다. 대출로 구한 전세 기한이 올해까지라고 하는데요, 본의 아니게 배수진을 치게 된 J의 앞날에 볕이 들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제게도 볕이 좀 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