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센티브
팀원들 연간 리뷰 준비하면서 한 생각.
- 사람을 움직이는 건 인센티브다. 참여자들이 각자의 욕망을 고려해서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두면 대게 일은 잘 굴러간다.
- 이게 말로는 쉬워 보이는데 보통은 일이 잘 안 굴러간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흔치 않기 때문. 자기 이해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건 비싸다.
- 자기의 욕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언어화해두지 않았다 하더라도 감정은 작동한다. 왜인지 말로 표현 못 해도 기분 좋을 수 있고 나쁠 수 있다. 이 ’왜’를 대신 설명해 주겠다며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디지털 마약과 사이비 이론들은 얼마나 많은지.
- 하지만 이것들은 ‘나’ 얄팍한 설명을 제시해 주긴 할지언정 무엇이 진짜 내 욕망인지-가령 상사의 인정인지, 팀워크 그 자체인지, 경제적인 성공인지-를 깨닫게 해주지는 못한다. 이런 것들은 몸으로 시간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갖게 되는 인식이다. T냐 P냐, 사주에 나무가 많냐 쇠가 많냐 따윌 얘기하는 건 재밌는 도피처지만, 도피처에 박혀서는 내 욕망을 알아낼 수도 없고 공통의 룰을 설계하는 논의의 언어를 획득해낼 수도 없다.
- 온갖 소음들로 정당화되고 증폭된 감정. 이 감정을 갖고 관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는 자기를 잘 모르거나, 아니면 자기에게 너무 집중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타인이 납득할 만한 설득력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제안할 확률이 떨어질 수밖에. 그렇게 구조를 만드는 데 깊이 관여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규칙에 대한 수용성도 떨어지고,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엔 룰 그 자체가 무력화된다. 개인과 조직이 같이 실패하는 케이스가 생긴다.
- 이런 실패가 누적되면 조직은 생존을 위해 조치를 취하게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을 줄이는 것.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간극을 늘려서 룰을 설계하는 쪽과 따르는 쪽을 엄격하게 나눠둔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엘리트의 인센티브 추구로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비엘리트 입장에선 인센티브 구조를 개선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부패와 배제의 문제가 일단 생기면 마찬가지로 그 조직은 실패한다. 커뮤니티에서 재현되는 회사의 모습이 자주 ‘고인 물이 모인 개판인 곳’인 걸 보면 이 또한 흔한 실패 같다.
- 이런 실패를 피하려면 반대로 하면 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 그 욕망에 충실하면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판으로 간다. 그 판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 하지만 우린 가짜 욕망을 만들어 내는 것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체제에 살고 있다. 불행하고 무능해지기 쉬운 조건에 처해있는 셈. 나를 설명해 주겠다는 온갖 소음에 휘둘릴 것인가 말 것인가. 모든 일상의 접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의 주권을 둘러싼 파워게임에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응전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욕망에 반하는 어려운 게임이 아니라 욕망을 추구하면서 인센티브까지 얻는 쉬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확률이 생긴다.
-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는 올바른 장소. 적이 아니라 팀과 함께할 수 있는 장소. 그런 곳에 나를 두는 것이 나 포함 모두에게 좋다.
-고야, 카프리초스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