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송, 슬쩍 돌아가기

No. 0177
2024.06.28 · 628자 · 약 1분 · 도판 15점

서울역엔 대합실이란 게 없다. 적어도 아빠가 기억하는 버전의 대합실은 없다. 서울역은 이제는 너무나 근사한 건축물이 되어버렸다. 광고의 파노라마 아래 관광객과 비둘기가 종종걸음치는 넓고 환한 공간이.

엄마 아빠는 내가 ‘요즘 시대’의 티겟이라도 된 것 마냥 내 손을 꼭 붙잡고 종종걸음을 친다. 내가 잘 아는 둥근 어깨를 들썩이며 코를 푼다.

엄마랑 아빠가 같이 서울에 온 건 7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70년대라니! 남대문 시장에 한번 가보잔 얘길 했지만 택시 타는 건 돈쓰는 거라 싫고 걷는 건 힘들어서 싫단다. 카페나 갈까 싶었지만 서울역에 있는 카페들은 모두 만석이다. 서울처럼. 서울은 그때도 만석이었다던데. 그냥 역에 있자는 결론이 나온다. 몸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만큼은 자신있어하는 가족이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대합실에서 사람 구경을 한다. 기차도, 시간도 아직 도착 전이다. 우리는 계단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한 시간. 두 시간-. 화장실에 가서 줄을 서고 다시 계단으로 돌아와서 또 한 시간-.

그 시간 어드메에서 나는 이제 ‘처음으로’ 해보는 일은 대부분 그대로 ‘마지막’이 되리란 생각을 또 했다.

집에 돌아와서 2-3년 전에 그려두고 클라우드 어딘가에 쳐박아뒀던 습작을 찾는다. 언젠간 다듬어서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었던 스케치. 그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찾아오는 내일-우리가 헤어진 다음 날에, 우리의 공통 일정은 출근. 우리의 약속, 우리의 복, 우리의 식사, 우리의 주말, 우리의 배웅, 우리의 그리움, 우리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모두 출근과 약지를 걸고 도장을 찍고 손을 흔들며 저기 기차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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