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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 미학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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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의 초대
에세이시절의 초대
멸종위기 직장인
에세이멸종위기 직장인
체스
아트워크체스
튀는 데 순서 없다
에세이튀는 데 순서 없다
시간의 시간
에세이시간의 시간
capa
아트워크capa
스위스의 오후
에세이스위스의 오후
밤과 일리아스와 새
에세이밤과 일리아스와 새
사소한 이유 습작
아트워크사소한 이유 습작
밥값의 시간, 노동의 유산
에세이밥값의 시간, 노동의 유산
<초심은 잃었지만> — 풀칠러와의 대담
에세이<초심은 잃었지만> — 풀칠러와의 대담
습관 퇴고
만화습관 퇴고
겸손의 힘
만화겸손의 힘
습관의 기원
만화습관의 기원
타성에 젖은 마음 말리기
만화타성에 젖은 마음 말리기
타성 유람기
에세이타성 유람기
환송, 슬쩍 돌아가기
만화환송, 슬쩍 돌아가기
괴물도감
에세이괴물도감
프로필 너머, 섬
에세이프로필 너머, 섬
비상벨을 누르고 싶어
에세이비상벨을 누르고 싶어
곱창맨 이야기
에세이곱창맨 이야기
2123년, 노동사박물관의 도슨트
소설2123년, 노동사박물관의 도슨트
퇴근 후의 시간
에세이퇴근 후의 시간
김장 비법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에세이김장 비법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나의 전세보증보험
에세이나의 전세보증보험
성장의 단상
에세이성장의 단상
유목의 계절
에세이유목의 계절
현자의 시간
에세이현자의 시간
연휴에 출근하는 마음속엔 무엇이 있나
에세이연휴에 출근하는 마음속엔 무엇이 있나
신용을 신용조회하기
에세이신용을 신용조회하기
개인사
에세이개인사
1“건강도 일이다.” 얼마 전 홀타운 미팅에서 대표가 한 말이다. 동료에게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기 위해, 하던 일을 차질 없이 해내기 위해선 건강을 지키는 것도 일이라는 맥락이었다. 그 날로 회사엔 건강검진이 새로운 복지로 추가됐다.2나는 일은 묵묵히 하고 복지는 빈틈없이 누리는 흔한 직장인이다. 잠자코 제일 가까운 날로 예약을 잡아 검진센터에 갔다. 인생 첫 건강검진이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몸에 걸친 초록색 가운의 서늘한 감촉 덕분에 헐렁한 가운에 맥없이 쌓여있는 몸뚱이에 생각이 가닿는다. 동시에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부분들, 외모, 직업, 취향 같은 것들은 사실 가운처럼 얇디얇은 지표층에 불과하단 생각도 든다. 나는 내 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모른다. 나는 모른다.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를 모른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주욱 나를 몰랐으니까. 나의 경계를 파악하기 위해 관계를 맺고, 나를 찾기 위해 꿈을 꾸고, 결국엔 나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게 된다. 관계 맺기, 꿈꾸기, 일하기가 인지의 차원에서 ‘나'를 정의하는 활동이라면 건강검진은 육체의 차원에서 그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는 활동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니 간호사가 손끝으로 반대편 복도를 가리킨다. 얇은 옷에 쌓인 사람들이 앉아있고 앞엔 문들이 많이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를 해부할 시간이다.
에세이건강도 일이다
바캉스 1 : 휴가철바캉스는 프랑스어로 ‘비운다’는 뜻이다. 휴가를 떠난 뒤 텅 빈 도시의 모습 때문에 휴가철을 바캉스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바캉스 2 : 알리바이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비틀대며 찾아들어간 카페에서 창을 내다보니 역 앞 표지석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생명이 넘실대는 도시 부산. 넘실댄다는 말을 입 안에서 가만히 굴려보다 충동적으로 부산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넘실대는 생명이 필요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강남에선 아무것도 넘실대지 않으니까.강남에서 생명은 넘실대는 대신 직각으로 움직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으로 움직이거나 지하철을 타고 수평으로 움직인다. 매일 아침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할 때마다 나는 지하철이 꼭 무기력을 유통하는 컨베이어 벨트 같단 생각을 한다. 이것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향한 불만이라기보단, 뭐랄까, 문명에 대한 불만이다. 그나마 주말이 있어 다행이다. 이렇게 떠나올 수 있으니.
에세이바캉스 사전
아침에 핸드폰을 보다 이제는 잘 연락하지 않는, 사귄 지 오래된 친구의 생일이란 걸 알게 됐다. 케이크 모양 그래픽이 눈에 밟힌다. 하지만 출근이 급하므로 무시한다.에디터라는 직무가 풍기는 뉘앙스 덕분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일종의 '글 프로'로 대우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가 회사에서 쓰는 글들이 좀 부끄럽다. 애를 많이 쓰긴 했지만, 완성까지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을 저울질할 시간도 퇴고를 위해 초고를 잠시 묵혀둘 시간도 없다. ‘내 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에디터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글을 잘 내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수행하는 기능은 글이라기보단 마감이다.같이 점심을 먹은 동료는 내게 잘 읽었다는 말을 건넨다. 나는 그 잘 읽었다는 말 때문에 그가 정말로 읽은 것인지, 조금은 의심스럽다. "원래 글을 좋아하세요?" 그가 물어왔다. 그는 디자이너다. 나는 대답하기가 애매해서 그냥 질문을 돌려준다. "디자인... 좋아하세요?" 그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그의 일을 좋아하냐고 물어볼 때는 앞에 '그래도..'라는 쿠션어를 쓰는 게 좋겠다. 어느 유명한 영화의 명대사처럼. 그래도 디자인 좋아하시죠?
에세이조각배
1내 인생의 첫 번째 탈주는 유치원에 처음 간 날이었다. 선생님은 내 앞에 사과가 그려진 종이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빨간색으로 칠해볼까?” 사과를 칠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나는 그 길로 조용히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유치원 밖을 슬쩍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상어 인형과 함께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의미있다고 믿는 일(상어 인형)을 위해선 왜 하는 지 당최 모르겠는 일(사과 색칠하기)을 때려치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최초의 사건이었다.다음 탈주는 다행히도 학교를 모두 마치고 난 다음이었다. 물론 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탈주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지만, 그땐 ‘땡땡이'라는 수습 가능한 일탈로 탈주 욕구를 적당히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나니 더 이상 땡땡이는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다. ‘존버'하거나, 탈주하거나 두 가지 옵션이 전부다. 이 냉혹한 이분법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갖춰야 할 자질이겠지만, 나는 늘 어른 되기보단 탈주닌자로 남는 편을 택했다.
에세이탈주의 역사
분갈이 몸살
에세이분갈이 몸살
대체불가능한 김치볶음밥
에세이대체불가능한 김치볶음밥
상경의 값
에세이상경의 값
최근의 여행은 제주도였다. 내겐 여행 갈 때 책을 딱 한 권만 들고 가는 버릇이 있다. 혹시나 시간과 비용을 쏟아서 가는 여행이 아무 의미 없이 끝나는 게 걱정돼서, 책이 담고 있는 의미가 여행의 의미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챙긴다. 의미의 보험이랄까. 책은 공들여 선정하지 않고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뽑아서 간다. 좀 미신적인 면모도 있지만 의미 부여란 결국엔 다 그런 거 아닌가.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얻은 책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신형철)』이다. 표지가 노란색 꽃이 가득 피어있는 들판 같길래 골랐다. 제주도 하면 유채꽃이니까. 저자는 책머리에 이런 문장을 써뒀다.<나는 해석자다. 해석자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이토록 근거가 탄탄한 자기소개라니. 책에 실린 모든 평론들이 모두 책머리에 실린 문장의 근거가 된다. 이 견고함은 나를 매료시켰다. 자신의 직업을 설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풍부한 사람을 부르는 말은 아마 '프로'일 것이다. 풍부한 포트폴리오에 덧붙여 <나는 OOO이다. OOO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면 그는 '프로' 이상의 무언가이지 않을까.
에세이나는 OOO이다
여전한 위협들
에세이여전한 위협들
공든 탑의 심정으로
에세이공든 탑의 심정으로
자리
만화자리
어메이징 용인술
에세이어메이징 용인술
수목원으로부터
에세이수목원으로부터
나는 비겁자로소이다
만화나는 비겁자로소이다
세이브포인트
만화세이브포인트
우리의 연휴 대화록
에세이우리의 연휴 대화록
FELLOWSHIP(2020s)
만화FELLOWSHIP(2020s)
퇴사할 땐 하고 싶은게 참 많았다. 매일 만화도 그리고, 내 브랜드도 런칭하고, 글도 꾸준히 써서 그걸로 먹고 사는 멋진 디지털 노마드가 되려 했었다. 1년 뒤, 하려 했던 것들을 조금씩은 다 건드려보긴 한 것 같긴 한데 결과는 영 신통찮다. 나는 과연 성장했나. 성장했다고 말하려면 이전엔 몰랐던 것, 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나는 되려 이전만 못 한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든다. 멈춰있진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멀리 온 것 같지도 않고. 출정과 퇴각을 번갈아가며 어지러운 발자국만 남긴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얻은 게 아주 없진 않다. 이런 저런 툴들을 조금 더 잘 만지게 되었다. 몇십 개의 SNS 게시물이 남았다. 두세 개의 프로젝트가 남았다. <풀칠>도 남았다. 하지만 이것들을 뜯어먹고 살 수 있을까. 내가 이룬 것들은 어쩌면 부지런한 직장인이 연차를 붙인 주말 서너 번으로 이룰 수 있던 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은 언제나 나를 깊은 불안에 빠트린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것들이 남들에겐 그저 사이드 프로젝트나 부업이란 이름으로 열정을 증명하고 돈을 벌어내는 바람직한 취미활동에 불과하다는 생각. 내 생각에 이건 진지해질수록 무능해지는 게임이다. 가볍게 시도하라는 조언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걸 보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에세이어느 무직 1년 차의 소회
언젠가 피라미드를 보러 갔었다. 동행 중엔 전직 가이드가 한 명 있었다. 그는 가이드답게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았다. 피라미드로 가는 불편한 지프 뒷자리에서 그는 내게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지은 이유를 이야기해 줬다.이집트인들에게 사막은 무한한 공간이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사막은 그들을 두렵게 했다. 이집트인들은 이 두려움을 관리하기 위해 꾀를 냈다. 원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원 안에 점을 찍어두면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고 낸 묘안이었다. 사막을 알 수 없다면 사막 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남기자. 그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렇게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세웠다.피라미드를 떠올린 건 달력을 보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어느새 1년이 다 되었단 걸 깨달아서다. 보잘것없는 1년이었다. 부자가 되지도 못했고, 유명해지지도 못했고, 행복을 찾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럭저럭 살아내는데 급급했던 1년을 돌아보는데 피라미드처럼 대단한 건축물이 떠오르다니, 이 무슨 과대망상인가 싶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피라미드의 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내 지난 1년이 피라미드의 옆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궁리를 시작했다.
에세이피라미드, 맥주 네 캔
월루의 미학
에세이월루의 미학
일로 만난 사이
소설일로 만난 사이
휴가의 의미를 찾아서
에세이휴가의 의미를 찾아서
퇴사한 지 어느새 1년이다. 원래 계획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였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받아서 하는 잡식성 노동자가 되었다. 내가 지금 백수인지, 프리랜서인지, 뭔지 모를 아리송한 상태로 시간이 쌓이는 것이 처음엔 불안했지만 요즘은 괜찮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니까 사랑하진 못해도 미워하진 말아야 한다고 도 닦는 소리를 숱하게 되뇐 덕분에 이제는 섣불리 희망에도 절망에도 몸을 내맡기지 않는, 그런 심드렁한 안온함을 즐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그럭저럭 살게 되었다.비슷한 시기에 밥벌이를 시작한 친구들도 딱 나만큼 그럭저럭 살게 된 것 같다. 1년 전엔 취업한 회사도 다르고 업무도 다르고 일에 대한 만족도도 제각각이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그렇지도 않다. 다들 아침엔 일하러 가고 퇴근하면 운동 좀 하고 좀 주말엔 맛있는 음식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면서, 비슷하게 사는 듯했다. 들쭉날쭉한 삶의 그래프가 1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풍화되어 평평해진 걸까? 아니면 달라봤자 정규분포 안이었던 걸까? 1년 전에 다르다고 생각했던 건 죄다 그대로인데, 이제는 비슷하단 느낌이 압도적이라는 게 이상했다.
에세이밋밋한 점심시간
무엇이 직함을 왜곡하나
에세이무엇이 직함을 왜곡하나
지난 주말에 친구가 책방을 오픈했다. 나는 거기서 일을 도왔다. 끼리끼리라고 얼굴을 비추러 온 친구의 친구들도 자영업자였다. 손님을 기다리며 우리는 둘러 앉아 커피를 마셨다. 벽의 두 면이 통유리인 친구의 책방은 햇살 맛집이었다. 우리는 책방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칭찬했다. 다들 자기 가게가 있다보니 자연스레 대화는 햇살 자랑 콘테스트가 됐다.참가번호 1번 카페 사장님은 자기 가게엔 오전 10시 쯤 볕이 잘 드는데 안쪽 벽이 나무재질이어서 꼭 평화로운 숲 속의 거대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자랑했다. 참가번호 2번 술집 사장님은 창이 서향이라 낮 동안엔 볕이 잘 안들지만 어차피 그 시간엔 영업을 안 하니 괜찮다고, 그래도 오픈 준비할 때 보이는 노을이 참 좋다며 웃는다. 주방에서만 보이고 어차피 그쯤엔 들어오는 손님도 없지만 그래서 저 노을이 오직 자기만을 위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한다. 햇살자랑을 하는 참가자들의 얼굴은 참 좋아보였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한마디 씩 하다보니 자연스레 내 차례가 돌아왔다. 친구가 묻는다. "너네 거긴 어때?" 친구의 친구인 사장님들이 묻는다. "상우씨도 가게 하세요?"
에세이햇살 자랑
화양(동)연화
에세이화양(동)연화
어젠 밤을 새웠다. 대학생 때야 술도 먹고 연애도 하고 게임도 하고 과제도 하려니 밤을 새우는 일이 빈번했지만 짧은 직장 생활을 거쳐 안온한 백수의 삶에 접어든 이후로는 처음 세우는 밤이다. 사실 밤을 새우는 건 고정 수익이 없는 백수에겐 적잖이 사치스러운 일이다. 잠의 효능-잠이 보약이다-을 누리지 못할뿐더러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세상에서 활동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불필요한 소비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자는 동안엔 돈을 못쓴다. 그러므로 매일 푹 자야 한다. 나의 24시간을 경제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우수' 등급을 받을만한 시간은 자는 시간이 유일할 것이다.엊그제 저녁에 친구와 새로 생긴 와인바에서 젊음과 힘이 느껴진다는 설명의 스페인산 싸구려 와인을 마시고 있을 때만 해도 밤을 새우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젊음과 힘이 느껴진다는 스페인 와인은 한 병에 3만 원 정도 했는데 공갈 코르크로 밀봉되어 있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친구는 공갈 코르크를 쓰는 와인이 3만 원이 넘는다는 건 사기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인데 작년에 만났을 때도 와인을 사 먹었다. 그때도 비슷한 와인을 비슷한 돈을 주고 사 먹었는데 그때는 즐겁게 마시다가 올해는 분통을 터트리는 걸 보면 1년 사이에 친구의 식견에 엄청난 발전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친구는 이제 제법 사회인 티가 났다. 안주를 시키고 술을 시키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 거침없는 태도는 '나 이제 돈 좀 번다'라는 생각이 없인 나올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식견을 이야기하다가 돈을 쓰는 품을 연결 지어 말하는 것이 속물 같긴 하지만 어떤 면에선 둘은 동의어이기도 하다.
에세이아직 젊은 날
첫 출근은 처음이라
에세이첫 출근은 처음이라
K씨의 루틴적 일상
에세이K씨의 루틴적 일상
변기 못 고치는 어른
에세이변기 못 고치는 어른
무능하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에세이무능하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원적외선 나노 한지 마스크필터와 K-악의 평범성
에세이원적외선 나노 한지 마스크필터와 K-악의 평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