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불안한 문장, 노인의 겸손한 문장

No. 0033
2021.06.17 · 1,532자 · 약 3분

요즘 인터뷰 검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인터뷰이가 하루에 하나씩 한 달 동안 질문에 답하면 그걸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의 글을 접하게 된다. 작업시간 때문에 일일이 읽어보진 못하고 문단 꼴 위주로 볼 수밖에 없지만 기어이 시선을 머물게 만드는 문장이 있다. 자꾸만 나타나며 작업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두 유형의 아름다움에 대해 기록해둔다.

첫 번째는 청년의 불안한 문장이다. 여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순결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닮아있다. 막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청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생에 대한 불안, 고뇌, 우울 같은 것들은 아직 세상의 어떤 모순에도 깊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불안한 문장은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나 으레 겪는 성장통쯤으로 누군가 이미 상품화해둔 문장의 복제품이 아니다. 어제까지의 삶을 길어 올려 내일의 삶을 창조하려는 시도에서 이는 불꽃같은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며 불안을 손쉽게 무마하려는 나태함이 아니라,’ 원래 이런 것인가?’를 묻는 집요함이기에 아름답다. 불성실한 독자인 나는 내 시선을 붙들어 놓은 불안한 문장을 읽으며, 이 문장을 써놓은 청년의 삶이 속히 안정을 찾아 행복해지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과 잘 섞이지 않는 야망을 계속 간직해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품는다. 이런 마음이 남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나는 편히 그 덕을 누리려는 비겁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문장의 화자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치기 어린’이라는 형용사로 수식될 수 있는 고민으로도 누군가를 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젊은 화자의 특권이다.

두 번째는 노인의 겸손한 문장이다. 겸손이야말로 나이 든 화자가 부릴 수 있는 최상의 기교다. 오랜 시간 살면서 겪은 부침이 분명 있을 텐데, 그런 것들 쯤이야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간결한 문장에서 느껴지는 덤덤함. 나는 이것을 겸손이라고 부르고 싶다. 겸손해 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 줄은 물론 알지만, 그저 덤덤함이라고만 부른다면 분명 존재했을 굴곡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드러내는 이 겸손의 기교는 얼마나 대단한가. 자신이 평생을 지켜온, 유일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 하나의 행위에 집중한 짧은 자기소개나 오랜 시간 간직해왔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움이나 그 꿈에 들인 숱한 노력이라던가 정열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설명하는 문장 앞에선 언제나 가슴이 저릿해진다. 또 이런 문장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노인의 겸손한 문장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떠벌리는데 급급했던 나의 지난날을, 또 좋아하는 것을 묵묵히 좋아하는 대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소리치는데 더 치중했던 지난날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렇게 노인의 겸손한 문장은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설명되는 무한을 가늠케 한다. 기록과 발화의 강박에 묶여있던 이는 무한 앞에 세워짐으로써 반성하게 되고,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줬던 문장의 형식을 빌려와 재구성해본다. 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 60년대생 어르신이 남긴 답변의 일부인데, 이 분은 두세 개의 문장만을 사용해 가고 싶은 장소를 설명해냈다. 다른 이들은 그 장소가 자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거기에 가고 싶어 했는지를 늘어놓았지만 어르신의 답변은 마치 가이드북에 실린 여행지 개요 같았다. 이런 식이었다.

첫 번째 스페인의 시골마을 피스떼라에요. 세상의 끝이라는 뜻의 지명이에요.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점이라고 하는데 해변까지 걸어가보고 싶어요. 터키의 파묵칼레도 가보고 싶네요. 파묵은 목화를, 칼레는 성을 뜻해요. 물에 석회 성분이 있어 피부에 좋다고 하네요. 한번 딸과 함께 들어가 보고 싶어요.

이 문장을 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을, 각각의 장소를 궁금해하며 정보를 모으고 거기 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봤을 시간 앞에서, 그 시간에 대하여 한 글자도 적지 않은 겸손함 앞에서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