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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의 초대또 십몇일이 지났고, 화분 흙은 바싹 말랐다. 물을 흠뻑 줬다. 금요일 퇴근 후 저녁, 토요일. 이틀 동안은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고 그냥 집에서 숏츠만 봤다. 주말엔 이래도 되는 건가? 안되는 건가? 오늘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작업실에 가서 저녁 먹기 전까지 외주 작업. 한 주 동안 마음 한구석을 콕콕 찌르던 투두 리스트 하나를 해치웠다. 한 번에 컨펌이 나면 좋겠다. 회사 일도 하려고 했는데 그건 못했다. 오늘 자기 전에 2-3시간은 봐야 하는데. 12시까지 일 좀 하고, 6시간 자고, 6시에 일어나서 다시 회사 가고. 그러면 8시 출근 시간 전까지 2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나는 내 시간을 이미 토큰화해서 쓰고 있다. 일이 끝없이 쏟아진다. 산성비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삶이 게임이라면 이왕이면 열심히 사냥하고 성장하고 더 강해지는 RPG 게임이면 좋겠는데. 잠수 좀 타도 되는 그런. 하지만 아니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판이고, 잠깐 한 눈 팔면 게임 오버다. 종종 '일이 많은 게 그래도 좋은 거지'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답답해진다. 물론 일을 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우울, 고립, 생존, 소외. 여기보다 한 단계 위에 노동과 피로와 소비와 불안. 여기보다 한 단계 위엔 뭐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스터디 카페는 일요일에도 하루 종일 만석이다.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꿈이라고 하던가-가 있던가. 아니면 아이가 있던가. 아니면 불만투성이로 맛있는 거나 사 먹으면서 늙어가던가. 삶에 반찬감을 의미는 생각보다 몇 개 없다. 삶이 왜 이렇게 서울의 묘하게 구린 프랜차이즈 식당들 같아지고 있는 것 같지. 비싸기만 비싸고 맛대가리가 없다. 진짜 자는 시간 빼고 일만 하는 선, 후배들이랑 겨우겨우 시간 맞춰서 밥 먹으면 서로 계산하려고 실랑이한다. 예전엔 왜 그러는지 이해 못 했는데 이젠 좀 알 것 같다. 돈이란 게 이럴 때나 쓰지, 나머진 뭐 벌고 모아봤자 대단한 이득도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로 일하는 후배는 의뢰인들을 만나러 서울 여기저기를 택시 타고 돌아다닌다. 의뢰인들은 대부분 무례하다고 한다. 의뢰인이 뒤에서 쫓아올까 봐 무서워서 택시를 타고나면 "빨리 출발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꽉 막힌 서울의 도로 위, 그는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말을 건다. 어떻게 지내세요. 다들 도대체 어떻게 계속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싶어서 말을 건단다. 다들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심히 일하고, 놀라우리만치 취약하다. 지하철에 찌그러져있는 우리들을 볼 때는 애틋하고 회의실에서 표정이 썩어있는 동료를 볼 때면 짜증이 난다. 연민과 경멸 모두 사람을 대하는 마음으로는 비슷하게 오답이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사진을 찍지 않는다.산성비
제철
백로白露
미래
늦여름의 점검일요일 : 월요일 할 일을 미리 하려고 마음먹지만 일요일에 쉬어야 한다는 도그마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상태로 하루 종일 뒹굴다가 저녁 즈음 겨우겨우 노트북을 켠다. 온갖 일들에 주의를 뺏기다가 결국 늦게 자는 날. 월요일 : 막상 출근하면 생각보단 할만한 날. 애써 회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주말 잘 보내셨나요라고 묻고, 돌아오는 적막을 견디는 날. 할 일 잔뜩 만들어두고 일단 퇴근한다. 화요일 : 야근하는 날. 일 말고 다른 생각하기 힘들다. 수요일 : 야근하는 날. 일 말고 다른 생각하기 힘들다. 2 목요일 : 수요일까지 똑바로 돌아갔으면 한숨 돌리고 병원에 가거나 귀찮은 행정 처리를 하거나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약속 잡아도 되는 날. 금요일 : 일상의 무게가 극적으로 가벼워지는 날. 일단 내일은 좀 쉴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이 가뿐하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제법 괜찮은 덩어리의 시간이 앞에 놓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낙관하게 된다. 토요일 : 최선을 다해서 사치와 방종을! 아, 벌써 어제가 아득하다.일주일쳇바퀴 안 타고 살 수는 없고, 지금 타고 있는 쳇바퀴가 맘에 안 든다고 여러 개의 쳇바퀴를 굴리려다간 몸이 상하고. 쳇바퀴 하나를 잘 골라야 하는데. 공원 뚫고 출근하는 길에 청설모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쳇바퀴. 열심히 타면 그 보상으로 더 쳇바퀴 타는 게 점점 더 쉬워져야 하는데. 굴리는 게 복리로 작동해야 하는데.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은 구조적으로 지는 게임 같다. 타수 아무리 빨라도 결국엔 게임 오버 당하는 산성비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일 쳐내고, 또 하나 쳐내고, 또 하나-. 일 마칠 때 나오는 도파민으로 목숨 연장하고. 그나마 이것도 안 하면 템 다 드롭하고 바로 태초마을에서 초보자로 다시 시작인 거다. 성황당 할머니한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세 번 외치고 싶어라.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밤은 선선하다. 애인 따라 지인 결혼식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대화. 올해 여름 진짜 더웠지. 응. 이게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여름 중 제일 시원한 여름이라니. 악담 좀 그만해. 악담 같은 현실을 파훼한 마땅한 전략도 없이 매일매일에 달려들고 있다. 달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같이 땀 흘리면서 뛰고 싶은 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쳇바퀴
비오는 날친구들 만나서 밤새 그 어떤 진지함도 없는 얘기만 하다가 술 냄새 풍기며 쓰러져 자기. 투 두 리스트, 워크플로, 루틴, 하네스, 루프 따위의 개념을 따라 흐르는 정보로 이뤄진 매끈하지만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시스템을 잠시 잊게 할 만큼 시끄럽고 무례하고 의미 없고 천박하게 놀기.해장국으로 끝나는 이 의례의 이름으론 역시 해장이 어울릴 것이다. 끊임없이 주의력을 좀먹는 디지털-주의력 노동의 취기를 가라앉히는 해장.결국 인간성은 노드로 쪼개질 것이다. 라벨이 붙은 데이터가 될 것이다. 무겁디무거운 의미가 모두의 승모근을 결리게 할 것이고 디지털 마약은 진실을 먼지로 풍화시켜 버릴 것이다.이 정해진 미래를 향해 가는 걸 멈출 순 없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엔 그래도 무의미의 셸터가 있다. 퇴행의 축제가 있다. 종종 먹고 마시고 해장하면서 가자.해장
돈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