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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73편 · 7 / 7
처음 가보는 공원에 가봤다. 올림픽 기념 체육 시설이 들어서 있는, 오래전에 조성된 공원이다. 꽤 넓은 공원인데 내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자리에 있어서 아예 존재 자체를 몰랐다. 공원은 수영장, 운동장, 배드민턴장, 족구장, 농구장이 차례대로 붙어있는 직사각형 꼴이었다. 나와 친구는 농구장 앞 벤치에 앉아서 피자와 맥주를 먹었다. 피자랑 맥주를 사서 공원에 오기 전까지 친구는 자소서를 썼고 나는 '소파 위에서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조금 썼다. 나는 친구가 자소서를 쓴 걸 알지만 친구는 내가 뭘 하는지 모른다. 그냥 뭘 하겠거니 했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모르겠지...하기야 나도 친구가 어떤 회사에 낼 자소서를 썼는지는 모르니까 서운할 것도 없다. 우리는 피자와 데스페라도스를 나눠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했다. 옛날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오랜 친구인 것은 확실하지만, 만나서 나누는 얘기의 대부분이 옛날이야기일 때 나는 조금 슬퍼진다. 오랜 우정이라기보단 늙은 우정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그런 우정.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다거나 친구가 싫어진 것은 아니지만 늙은 우정 앞에서는 언제나 조금 외롭다. 새롭게 외로워진 것이 아니라, 늙은 우정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항상 느끼고 있는 외로움을 향한 길을 터준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을 조금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맥주를 마시던 친구가 말했다. "아 너무 외롭다" 친구는 같이 있을 때 외롭다고 말해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관계에 붙이는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상처 받지 않았다. 나도 대답했다. "그러게. 개 외롭네" 우리는 서로가 외로움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 주변엔 두 패거리가 있었다. 하나는 2:3으로 농구를 하고 있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둘기들이었다. 우리는 둘 다 농구하는 아이들 쪽에 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2:3으로 농구를 하고 있으므로 딱 1명만 낄 자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은 농구하는 아이들에게 가고, 진 사람은 비둘기들에게 가기로 했다. 내가 가위바위보에서 졌다. 가위바위보를 하기 전엔 비둘기랑 놀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고 나니 농구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얘기했다. 넌 농구 안 하지 않느냐, 나는 00포대의 르브론 제임스였다. 그러니까 한 번만 바꿔줘라. 친구는 잠시 망설이다가 바꿔줬다. 친구는 비둘기랑 뭘 같이 하긴 싫지만 어차피 벤치 주변엔 비둘기가 많고, 네가 농구장으로 가면 나는 더 이상 무리가 아니라 혼자가 되므로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비둘기 사이에 있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를 비둘기 무리 속에 버려두고 농구를 하러 갔다. 그런데 농구장을 향해 가다 보니 아이들이 나랑 같이 농구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2:3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애초에 외로워서 농구를 하고 싶어 했단 걸 기억해 냈다. 만약 아이들이 나랑 농구를 하기 싫어하는데 그 사이에 껴서 농구를 한다면 친구랑 같이 있는 것보다 천 배는 더 외로운 일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비둘기들에게 돌아갔다. 친구는 왜 돌아왔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비둘기가 구애 중이니까 한번 보라고 했다. 유난히 목이 부푼 비둘기 한 마리가 다른 비둘기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아침에 산에 가면 들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말없이 비둘기를 봤다.늙은 우정휴가의 의미를 찾아서퇴사한 지 어느새 1년이다. 원래 계획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였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받아서 하는 잡식성 노동자가 되었다. 내가 지금 백수인지, 프리랜서인지, 뭔지 모를 아리송한 상태로 시간이 쌓이는 것이 처음엔 불안했지만 요즘은 괜찮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니까 사랑하진 못해도 미워하진 말아야 한다고 도 닦는 소리를 숱하게 되뇐 덕분에 이제는 섣불리 희망에도 절망에도 몸을 내맡기지 않는, 그런 심드렁한 안온함을 즐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그럭저럭 살게 되었다.비슷한 시기에 밥벌이를 시작한 친구들도 딱 나만큼 그럭저럭 살게 된 것 같다. 1년 전엔 취업한 회사도 다르고 업무도 다르고 일에 대한 만족도도 제각각이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그렇지도 않다. 다들 아침엔 일하러 가고 퇴근하면 운동 좀 하고 좀 주말엔 맛있는 음식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면서, 비슷하게 사는 듯했다. 들쭉날쭉한 삶의 그래프가 1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풍화되어 평평해진 걸까? 아니면 달라봤자 정규분포 안이었던 걸까? 1년 전에 다르다고 생각했던 건 죄다 그대로인데, 이제는 비슷하단 느낌이 압도적이라는 게 이상했다.오늘은 휴가를 쓴 J가 같이 점심을 먹자며 찾아왔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J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우리는 지금 여전히 같은 도시에 있고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나는 J의 집을 찾지 않는다. 이유를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냥 그래야 한다는 걸 안다. J의 차를 타고 학교 근처의 국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학교 근처에 와서 밥을 먹었는데도 학교 이야기는 둘 다 거의 하지 않았다. J는 요즘 야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출퇴근이 없으니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육개장 맛이 좀 변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비싸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서로 늙었다는 이야기를 하다 넌 그대로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보다 벌이가 좋은 J가 밥을 샀고 나는 커피를 샀다. 점심시간 1시간을 보낸 다음 나는 다시 노트북을 켰고 J는 세차를 하러 갔다.밋밋한 점심시간화양(동)연화K씨의 루틴적 일상변기 못 고치는 어른무능하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