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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73편 · 5 / 7
나의 전세보증보험진단의 효능유목의 계절현자의 시간고해성사신용을 신용조회하기개인사건강검진계획대로바캉스 1 : 휴가철바캉스는 프랑스어로 ‘비운다’는 뜻이다. 휴가를 떠난 뒤 텅 빈 도시의 모습 때문에 휴가철을 바캉스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바캉스 2 : 알리바이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비틀대며 찾아들어간 카페에서 창을 내다보니 역 앞 표지석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생명이 넘실대는 도시 부산. 넘실댄다는 말을 입 안에서 가만히 굴려보다 충동적으로 부산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넘실대는 생명이 필요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강남에선 아무것도 넘실대지 않으니까.강남에서 생명은 넘실대는 대신 직각으로 움직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으로 움직이거나 지하철을 타고 수평으로 움직인다. 매일 아침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할 때마다 나는 지하철이 꼭 무기력을 유통하는 컨베이어 벨트 같단 생각을 한다. 이것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향한 불만이라기보단, 뭐랄까, 문명에 대한 불만이다. 그나마 주말이 있어 다행이다. 이렇게 떠나올 수 있으니.휴가철이라 웃돈을 잔뜩 주고 구한 숙소는 창밖으로 광안리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월급의 크기란 참 절묘해서, 인생의 걱정을 줄이는 데엔 별 도움이 안 되지만 이렇게 가끔씩 오션뷰 호텔에 묵는 사치를 누릴 순 있다. 숙소에 짐을 푼 것만으로도 이미 오늘의 할 일을 모두 해낸 기분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무래도 이거였나 보다. 넘실대는 생명과 쾌적한 하얀 방.사실 모든 여행엔 ‘아, 이걸 위해 여행을 떠났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촉각을 곤두세우면 두고 온 삶에 무엇을 부족한지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이. 이제 막 짐을 풀었을 뿐인데 벌써 결핍을 두 개나 찾아냈으니 이번 여행은 제법 유능한 편이다. 넘실대는 생명과 쾌적한 공간이 적혀있는 분실물 목록을 다른 말로 다시 적는다면 아마 '영혼과 집' 정도일 것이다. 영혼과 집을 잃어버리다니. 그런데 인간이 영혼과 집을 잃는다면 그게 과연 인간인가. 나는 텅 비어있다. 사람들이 바캉스를 떠나는 이유는 비어있음을 숨기기 위한 알리바이가 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바캉스 사전아침에 핸드폰을 보다 이제는 잘 연락하지 않는, 사귄 지 오래된 친구의 생일이란 걸 알게 됐다. 케이크 모양 그래픽이 눈에 밟힌다. 하지만 출근이 급하므로 무시한다.에디터라는 직무가 풍기는 뉘앙스 덕분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일종의 '글 프로'로 대우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가 회사에서 쓰는 글들이 좀 부끄럽다. 애를 많이 쓰긴 했지만, 완성까지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을 저울질할 시간도 퇴고를 위해 초고를 잠시 묵혀둘 시간도 없다. ‘내 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에디터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글을 잘 내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수행하는 기능은 글이라기보단 마감이다.같이 점심을 먹은 동료는 내게 잘 읽었다는 말을 건넨다. 나는 그 잘 읽었다는 말 때문에 그가 정말로 읽은 것인지, 조금은 의심스럽다. "원래 글을 좋아하세요?" 그가 물어왔다. 그는 디자이너다. 나는 대답하기가 애매해서 그냥 질문을 돌려준다. "디자인... 좋아하세요?" 그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그의 일을 좋아하냐고 물어볼 때는 앞에 '그래도..'라는 쿠션어를 쓰는 게 좋겠다. 어느 유명한 영화의 명대사처럼. 그래도 디자인 좋아하시죠?회사의 개발자들과 얘기할 때마다 나는 글쓰기가 코딩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글쓰기도 모르고 개발도 잘 모르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개발자들이란 대게 눈이 퀭하고, 커피를 많이 마시며, 오랜 시간 자판을 타닥거리는 이들이라는 스테레오타입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그런 모습으로 자주 마주친다. 늦은 시간에. 화장실에서. 공통점은 또 있다. 우리가 하는 일 뒤엔 '짠다'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코드를 짠다. 논리를 짠다. 눈물을 짠다. 그래도 개발 좋아하시죠?조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