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시간
연차를 썼다.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집에만 있기로 한다. 동네를 대낮에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휴양이다. 공들여 부풀린 꽃다발 같은 초록 하양의 이팝나무가 만개한 계절. 꽃그림자가 아스팔트 위를 어른대기 시작하면 나도 슬리퍼를 끌고 공원으로 나간다.
이른 아침인데도 노인들이 많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빠른 걸음으로 산책로를 도는 노인들의 행진에 슬쩍 끼어들어서, 공원 밖의 세상을 생각한다. 쓸데없이 요란해서 나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명함과,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의 맛을 알려준 회사 앞 카페와, 인간이 만든 모든 지식을 학습했다는 인공지능과, 회의, 회의, 회의들. 잠시 부재중 알림을 띄워두고 온 나의 밥벌이들을.
이번 주엔 정말로 그것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도 된다. 앞으로 하루 이틀은 돈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시험 기간도 아니고, 병실에서 의사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온갖 잡다한 고민 없이 보낼 수 있는 지구에서의 시간이라니. 완벽하게 치워져 있는 책상, 혹은 충분히 크고 깨끗한 캔버스 같은 시간을 누릴 자유를 손에 넣었다. 뭘 해야 할까.
싱겁게도 내 마음은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다고 한다. 어쩌다 욕망하기를, 또 욕망하기를 욕망하는 것에도 흥미를 잃어버리게 됐나. 지난 몇 년 간 야근을 너무 많이 해서 고장이 난 걸까.
지난주엔 어떤 작가에게 책에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내게 소원이 있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아마도 신이 내게 같은 걸 물었을 때에도 우물쭈물하다가 그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 운명이란 걸 깨달았고.
소원이 도대체 뭐지. 소원이 어떻게 있지. 아니, 소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지. 가슴속에 난 어떤 어두운 공간을 순식간에 모른 체하고, 목울대를 애써 누르느라 먹먹해진 목소리를 티 내지 않고서?
소원이란 너무 애틋한 말이다. 다분히 신파적인 단어다. 소원은,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막다른 골목이다.
공원을 계속해서 걷는다. 산책로를 벗어나 소원의 반대 방향으로, 더 이상 그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걷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기척이 잦아들고, 그림자는 짧아진다. 어쩌면 소원의 반대항은 해탈이나 금욕 따위가 아니라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시간. 사용되길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시간. 페트병에 들어 있는 물이 아니라 강이나 바다 같은 그런 시간.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다 볕이 너무 뜨거우면 그대로 첨벙첨벙 달려가 몸을 푹 담가 볼 수도 있는 시간.
한참 멱 감고 놀고 나선 발만 적시고 누워 그 값비싸다는 유한성이 광속으로 흘러가는 것을 잠결의 곁눈으로 볼 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 시간. 어떤 시간에도 속하지 않는 시간의 시간. 내가 감히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연차를 쓰거나, 낮잠을 자면서 꿈을 꾸거나, 조용히 책을 읽거나, 술에 취하거나. 이건 모두 시간에 조금 더 깊이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에 하는 일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시간의 더 깊은 곳으로.
땅을 따라 시선을 긋다가 벤치 아래에 느긋하게 누워있는 개들과 눈이 마주친다. 졸릴 때 마음대로 졸 수 있는 팔자를 타고난 이들-목줄을 찬 미지의 주민들의 눈동자에서 마음대로 읽어낸 이야기.
“같은 물에 두 번 발 담굴 순 없다고들 하지. 맞는 말이야. 시간도 마찬가지야. 두 번은 없어. 모든 게 단 한 번, 순식간에 지나가는 건데도 왜 조금 더 많이 느끼는 걸 선택하지 않지? 왜 시간을 향해 가는 법을 모르지?“
다시 공원. 그림자를 모조리 흩어버리는 한낮의 태양. 꽃가루가 코를 간질이고, 햇볕이 하얗게 부서지며 정수리를 따끈하게 데우는 정오의 풀밭을 걷는다. 어른들에겐 소원을 묻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겐 꿈이 뭔지 묻는 풍습을 가진 나라에 사는 나는 어린 시절의 여름휴가를, 거기에서 지었던 모래성을, 모래성을 지을 때 성 속의 주민들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기억해내려 애쓰며.
“어떤 섬에 살던 부족이 있었대. 이제는 사라졌단다. 거기서 쓰던 언어에선 시간과 꿈을 뜻하는 단어가 똑같았대. 그들은 시계 대신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헤아렸단다. 그곳의 아이들도 여기와 마찬가지로 해변에서 모래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데 모래성이 부서지지 않고 버티는 시간, 아이의 흥미가 모래에 머무는 한나절 동안이 바로 시간의 단위지. 거기서 시간은 책상에 앉아 있을 때, 헤엄을 칠 때, 나무 그늘에 앉아 있을 때 모두 각각 다르게 흐르는데, 그 섬에서 시간이란 마땅히 그렇게 흘러야 하는 거였지.
모두가 각자의 시간에서 머물고 있기 때문에 밤이든 낮이든 큰 차이 없이 늘 조용한 그곳에는 시간을 다르게 세야 하는 경우가 딱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을 때야.
그러면 그들은 서로의 눈을 충분할 때까지 바라본단다. 그게 얼마나 오래냐고? 음… 모래성이 수없이 만들어지고 부서지고, 바람이 지구를 몇 바퀴 돌고… 아무래도 그 기적을 이해하기에 필요한 만큼이라고 밖에 못 말하겠네. 우리말로 번역이 좀 어려워. 굳이 고르자면-음-인생? 그 섬에선 이걸 사람의 생을 헤아리는 단위로 쓰거든.“
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림자가 빼꼼 자라났다. 그림자의 무게에 못 이기는 척 이제 그만 돌아가기로 한다. 지금이 몇 시쯤이려나.
괜찮다. 아직 휴가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