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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61편 · 6 / 6
일로 만난 사이무엇이 직함을 왜곡하나지난 주말에 친구가 책방을 오픈했다. 나는 거기서 일을 도왔다. 끼리끼리라고 얼굴을 비추러 온 친구의 친구들도 자영업자였다. 손님을 기다리며 우리는 둘러 앉아 커피를 마셨다. 벽의 두 면이 통유리인 친구의 책방은 햇살 맛집이었다. 우리는 책방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칭찬했다. 다들 자기 가게가 있다보니 자연스레 대화는 햇살 자랑 콘테스트가 됐다.참가번호 1번 카페 사장님은 자기 가게엔 오전 10시 쯤 볕이 잘 드는데 안쪽 벽이 나무재질이어서 꼭 평화로운 숲 속의 거대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자랑했다. 참가번호 2번 술집 사장님은 창이 서향이라 낮 동안엔 볕이 잘 안들지만 어차피 그 시간엔 영업을 안 하니 괜찮다고, 그래도 오픈 준비할 때 보이는 노을이 참 좋다며 웃는다. 주방에서만 보이고 어차피 그쯤엔 들어오는 손님도 없지만 그래서 저 노을이 오직 자기만을 위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한다. 햇살자랑을 하는 참가자들의 얼굴은 참 좋아보였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한마디 씩 하다보니 자연스레 내 차례가 돌아왔다. 친구가 묻는다. "너네 거긴 어때?" 친구의 친구인 사장님들이 묻는다. "상우씨도 가게 하세요?"가게는 아니지만, 나도 내 공간을 갖고 있긴 했다. 누군가는 사무실(자식이 뭔가 그럴듯한 일을 하고 있으리라 믿는 부모님 시점)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작업실(프리랜서 친구들 시점)이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아지트(술꾼 시점)라고 부르는 월세 10만원짜리 노옵션 옥탑방이다. 나는 거기다 동네 형이 준 컴퓨터, 거실에서 자리만 차지하던 산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소파, 누군가 버린 책상,책꽂이,라꾸라꾸와 당근마켓에서 산 커피포트를 가져다 두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쯤 자랑할만한 햇살이 비추는지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주절댔다. ”어...그냥 작업실?같은게 있긴 한데 햇살은 잘 모르겠네요? 신경쓰질 않아서?“ 내 말을 들은 사장들은 어떻게 그걸 신경쓰지 않을 수 있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게는 그 갸우뚱이 자기 일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가장 좋은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을 모를리가 없다는 비난처럼 느껴졌다.햇살 자랑어젠 밤을 새웠다. 대학생 때야 술도 먹고 연애도 하고 게임도 하고 과제도 하려니 밤을 새우는 일이 빈번했지만 짧은 직장 생활을 거쳐 안온한 백수의 삶에 접어든 이후로는 처음 세우는 밤이다. 사실 밤을 새우는 건 고정 수익이 없는 백수에겐 적잖이 사치스러운 일이다. 잠의 효능-잠이 보약이다-을 누리지 못할뿐더러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세상에서 활동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불필요한 소비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자는 동안엔 돈을 못쓴다. 그러므로 매일 푹 자야 한다. 나의 24시간을 경제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우수' 등급을 받을만한 시간은 자는 시간이 유일할 것이다.엊그제 저녁에 친구와 새로 생긴 와인바에서 젊음과 힘이 느껴진다는 설명의 스페인산 싸구려 와인을 마시고 있을 때만 해도 밤을 새우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젊음과 힘이 느껴진다는 스페인 와인은 한 병에 3만 원 정도 했는데 공갈 코르크로 밀봉되어 있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친구는 공갈 코르크를 쓰는 와인이 3만 원이 넘는다는 건 사기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인데 작년에 만났을 때도 와인을 사 먹었다. 그때도 비슷한 와인을 비슷한 돈을 주고 사 먹었는데 그때는 즐겁게 마시다가 올해는 분통을 터트리는 걸 보면 1년 사이에 친구의 식견에 엄청난 발전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친구는 이제 제법 사회인 티가 났다. 안주를 시키고 술을 시키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 거침없는 태도는 '나 이제 돈 좀 번다'라는 생각이 없인 나올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식견을 이야기하다가 돈을 쓰는 품을 연결 지어 말하는 것이 속물 같긴 하지만 어떤 면에선 둘은 동의어이기도 하다.친구의 관심사는 차였다. 요즘 뭘 타냐고 해서 나는 주로 벨로라인 클라우드를 탄다고 했다. 벨로라인 클라우드는 내가 타는 자전거의 모델명이다. 왜 면허도 있는데 운전을 안 하냐고 물어서 잠시 생각해봤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주차를 할 자신이 없다. 안 그래도 좁아터진 골목길이며 주차장이며 하는 공간에 비집고 들어가 그만큼의 공간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짓거리를 할 자신도 없거니와 마음이 없다. 나는 딱 자전거만큼의 공간만 쓰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요즘 이 자전거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배달을 해서 새로 구한 작업실의 월세를 낼만큼은 번다고 자랑도 했다. 잘나가는 사람들의 용어로 풀자면 '수익 파이프라인'이 하나 생긴 셈이다. 나의 자전거 사랑을 듣자 친구는 넌 아직 청춘이구나라고 했다. 청춘이라는 화두는 내가 늘 마음에 품고 다니며 고민하는 화두다. 나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들은 내게 넌 아직 청춘이구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우월감과 부러움을 동시에 담고 있는 말인 걸 알지만 나도 열등감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기에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마침 마시고 있는 와인이 싸구려긴 하지만 젊음과 힘이 느껴지는 와인이라니까 이거나 부지런히 마시자고 했다.아직 젊은 날첫 출근은 처음이라원적외선 나노 한지 마스크필터와 K-악의 평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