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레날린 도구
마드레날린이란? 마감+아드레날린.
뭔가 할 일을 설정하고 그걸 완료했을 때의 순간적인 들뜸.
마드레날린이 잘 나와야 텐션 안 떨어지고 제 몫을 한다.
원활한 마드레날린 분출을 도와주는 도구들들.
1.무지 메모장 체크리스트. 1500원짜리. 여기에 매일 아침 해야 할 일을 쭉 적는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 딱 하나에만 별표를 친다. 일을 하나 끝낼 때마다 찍찍 긋는다. 하루가 지나면 한 장을 뜯어서 찢어버린다. 찢은 조각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생각한다. ‘다시는 내 인생에 나타나지 마!’ 노션, 투두 관리 앱 등 투두 앱 엄청 많이 써봤는데 결국 최종 정착한 도구. 디지털 저장소 어딘가에 문서를 생성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종이를 찢는 쾌감도 좋고. 남들이 말랑이 만질 때 난 종이를 찢어.
2.네이버 블로그. 뭐라도 쓴다. 발행 버튼을 누른다. 뇌에 신호가 간다. 도파민이 나온다. 그 도파민을 연료 삼아서 빠르게 다음 할 일로 넘어간다.
3.작업 일지. 매일 하루 끝내기 전에 그날 한 일을 적는다. 불렛포인트 하나에 짧은 단어 하나씩만. 나 혼자 알아볼 정도면 된다. 뭔가 더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도 참는다. 절대로 무거워지면 안 된다. 투두리스트가 해야 할 일을 적는 거라면 여긴 실제로 한 일이 무엇인지만, 아주아주 간단히 적는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걸 쓴다고 해서 의미가 생긴다는 건 솔직히 개인 단위에선 억지다. 데이터를 써야 하는 기업이라면 모를까) 래퍼런스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지리학자나 퍼펙트 데이즈의 사진 보관함. 의미를 기록하려는 리추얼은 왜 항상 무의미해 보이는 걸까?
여하튼, 아무 생각 없이 그날 한 일을 적어서, 나 혼자 가꿀 목적으로 파둔 웹상의 어떤 공간에 둔다. 하루 끝에 작은 무의미를 실천함으로써 실제로는 모든 일이 헛되고 헛되다는 치명적인 현실을 직면할 힘을 얻는다. ‘알아. 다 안다고.’ 무의미에 대한 일종의 백신이다.
4.일기. 두 버전이 있다. 디지털 버전과 아날로그 버전. 도구가 달라서 생각의 속도가 다르다. 수첩에 적은 것은 과묵하고 노트북으로 적은 것은 수다스럽다. 수첩에 적은 것은 이미지가 되고 노트북으로 쓴 것은 텍스트로만 남는다. 둘 다 특별한 쓸모는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잘 쌓아둔다. 일기의 진짜 동기는 뭐지? 언젠가 내가 나를 돌아볼 것이라는 기대? 그건 은연중에 미래의 나를 믿고 있단 뜻인가? 미래의 나를 긍정하기. 이게 일기의 역할이라면, 현재를 과거로 만드는 데 얼마간의 시간을 쓰는 것은 의미가 있다. 어차피 그러지 않아도 현재는 착실히 과거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