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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비법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성장의 단상
현자의 시간
연휴에 출근하는 마음속엔 무엇이 있나1“건강도 일이다.” 얼마 전 홀타운 미팅에서 대표가 한 말이다. 동료에게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기 위해, 하던 일을 차질 없이 해내기 위해선 건강을 지키는 것도 일이라는 맥락이었다. 그 날로 회사엔 건강검진이 새로운 복지로 추가됐다.2나는 일은 묵묵히 하고 복지는 빈틈없이 누리는 흔한 직장인이다. 잠자코 제일 가까운 날로 예약을 잡아 검진센터에 갔다. 인생 첫 건강검진이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몸에 걸친 초록색 가운의 서늘한 감촉 덕분에 헐렁한 가운에 맥없이 쌓여있는 몸뚱이에 생각이 가닿는다. 동시에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부분들, 외모, 직업, 취향 같은 것들은 사실 가운처럼 얇디얇은 지표층에 불과하단 생각도 든다. 나는 내 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모른다. 나는 모른다.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를 모른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주욱 나를 몰랐으니까. 나의 경계를 파악하기 위해 관계를 맺고, 나를 찾기 위해 꿈을 꾸고, 결국엔 나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게 된다. 관계 맺기, 꿈꾸기, 일하기가 인지의 차원에서 ‘나'를 정의하는 활동이라면 건강검진은 육체의 차원에서 그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는 활동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니 간호사가 손끝으로 반대편 복도를 가리킨다. 얇은 옷에 쌓인 사람들이 앉아있고 앞엔 문들이 많이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를 해부할 시간이다.3종합검진센터는 미로 같았다. 방 번호를 찾아 헤매다 문 앞에 카드 키를 찍으면 내 번호가 화면에 나타난다. 잠시 기다리다 보면 기계음이 내 번호를 부른다. 어떤 의사는 눈을, 어떤 의사는 귀를, 어떤 의사는 가슴속을 살펴본다. 결과는 당장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이 내 몸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혹시 어떤 질병을 발견한 것은 아닌지 몹시 궁금하다. 나는 최근에 부쩍 늙어버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건강도 일이다1내 인생의 첫 번째 탈주는 유치원에 처음 간 날이었다. 선생님은 내 앞에 사과가 그려진 종이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빨간색으로 칠해볼까?” 사과를 칠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나는 그 길로 조용히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유치원 밖을 슬쩍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상어 인형과 함께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의미있다고 믿는 일(상어 인형)을 위해선 왜 하는 지 당최 모르겠는 일(사과 색칠하기)을 때려치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최초의 사건이었다.다음 탈주는 다행히도 학교를 모두 마치고 난 다음이었다. 물론 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탈주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지만, 그땐 ‘땡땡이'라는 수습 가능한 일탈로 탈주 욕구를 적당히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나니 더 이상 땡땡이는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다. ‘존버'하거나, 탈주하거나 두 가지 옵션이 전부다. 이 냉혹한 이분법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갖춰야 할 자질이겠지만, 나는 늘 어른 되기보단 탈주닌자로 남는 편을 택했다.2나름 크고 안정적이었던 첫 번째 회사는 모든 게 너무 지루하고 좀 우습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어야 한다면 이왕이면 재밌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절이 싫으면 별 수 있나, 중이 떠나야지. 탈주.재밌는 일을 찾아 들어간 두 번째 회사도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었다. 적당히 재밌고, 업무량도 적당하고. 그런데 이번엔 그 적당함을 참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는데 그 시간을 적당히 흘려보내는 게 젊음에 대한 죄악처럼 느껴졌다. 어딘가에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매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며 돈과 재미도 놓치지 않는 삶이 있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한, 치기 어린 향수병을 대차게 앓다 또다시 탈주.탈주의 역사취준생과 직장인 그 사이 어딘가, 계약직이 있다. 일을 하면서도 계속 다음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 대전의 한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J씨를 만났다.계약직 청년의 페르소나로 선정됐다. 선정된 소감과 계약직으로서의 히스토리를 알려달라.계약직의 페르소나라니 당치도 않다. 그저 수십만 계약직 중 한 명일 뿐이다. 지금은 모 공공기관 홍보팀에서 1년짜리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고, 이전엔 세종 소재 국책 연구원에서 6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일했었다. 그 전에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출산휴가 대체 인력으로 일한 적 있다. 졸업하고 일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안됐는데 벌써 3번째 회사다.‘지방, 공공기관, 계약직’의 키워드로 커리어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 ‘지방, 공공기관,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사실 지방 사람에겐 공공기관만 한 직장이 없다. 안정적이고, 업무 강도가 낮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고, 무엇보다도 일단 집에서 다닐 수 있다. 고향에서 살려면 공공기관 아니면 공무원이다. 근데 난 공채를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졸업하고 집안 형편 상 어떻게든 빨리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뽑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공채보단 수시로 공고가 올라오는 계약직에 더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NCS를 준비하면서 독서실 다닐 필요 없이, 아삽(ASAP)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렇게 계약직의 세계에 입문했다..직장을 찾아서 ‘지방, 공공기관, 계약직’의 세계에 들어섰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원래 하고 싶었던 직업은 따로 없었나?사실 전공을 살려서 광고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졸업 전에 서울에 있는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을 잠깐 했었는데 그때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다들 겪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집값이며 생활비며 경제적인 문제에서부터 서울이라는 낯선 환경에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은 정서적인 부분까지 여러모로 지옥이었다. 아무래도 집이 지방이다 보니까 감수해야 할 것들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은데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랄까, 역량이랄까. 뭐가 됐든 그게 없는 사람이었다.계속 다음 일을 찾는 이들
여전한 위협들
자리
어메이징 용인술
수목원으로부터
나는 비겁자로소이다